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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어를 토키포나로 번역함에 대한 극히 주관적인 생각(스압).

jan Sejulo 2022. 7. 22. 21:37

※ 이 글의 언급된 방식은 모두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극히 주관적인 방법이므로 참고로만 하시길 권장합니다.

 

토키포나에 갓 입문했거나, 문법을 튼튼히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토키포나로 자연어를 번역하다 보면 다른언어로 번역한 문장에 비해, 토키포나로 번역한 문장은 상당히 망가진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토키포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다른 언어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는 장난감 자동차(토키포나)로 실제 자동차(자연언어)의 효과를 보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토키포나는 다른 자연언어들과 다르게, 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만든 일종의 실험어이며, 특히 최소주의를 지향하는 언어라 모든 뉘앙스와 의미를 섬세하게 나타내려는 자연어와는 극도로 대비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토키포나로는 법률이나 과학과 같은 전문적인 문서를 원문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심지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 조차 쉽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여기 과일 하나가 있습니다.

 kili loje.

이 과일은 무슨 과일일까요? 너무 광범위 하다고요? 좋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정보를 추가하겠습니다.

 kili suwi loje.

 붉은 달콤한 과일? 

아직 어렵나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kili suwi pi sijelo jelo insa pi selo loje en jelo en laso.

 붉고 노랗고 녹색빛을 띄는 껍질의 노란 속살의 달콤한 과일.

자, 이제 무슨 과일인지 눈치채셨나요?

이 과일은 바로 "애플망고"입니다. 어떠셨나요? 맞추셨나요?

맞추셨다면 여러분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거나,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분이실지도 모르겠군요!

 

위에 나온 kili suwi pi sijelo insa jelo  pi selo loje en jelo en laso 이 구문은 사실 그다지 토키포나스럽지 않은 구문입니다.

가장 토키포나다운 표현으로는 "kili"라는 단어로도 충분합니다. 다만 여러가지 과일들이 있을 때 문맥상 어느정도는 구분이 필요하다면 suwi 라던가 loje 등의 형용사를 넣어주는 정도로 충분할 것입니다.

 

토키포나에서는 사과를 먹었는지 망고를 먹었는지 딸기를 먹었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일"을 먹었다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지요.

토키포나는 토키포나에 주어진 단어들로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할 수록 토키포나다운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화자들 사이에서도 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영어권 화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마찬가지로요. 사람들의 본능은 자신의 행위를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나타내기를 원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심리가 자연스레 최소를 추구하는 토키포나에도 스며든 것입니다.

 

그래도 위의 어구를 정말로 표현하고 싶을 때, 토키포나로 자연스럽게 나타내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 ni li kili. ona li jo e sijelo jelo insa. kule selo ni li jo e loje e jelo e laso.

▷ 이것은 과일이다. 그것은 안쪽에 노란 속살을 지니고 있다. 이 껍질의 색깔은 빨강, 노랑 그리고 초록이다.

그나마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단어를 토키포나로 가능한 구체적으로 나타내는데만도 이만큼의 서술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기다란 문장을 토키포나를 사용해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번역한다면?

아마 어마어마하게 길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번역이 좋은 토키포나 번역일까요?


<1> 토키포나의 문법을 충분히 익힌다.

 

다른 자연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도착어(번역이 될 텍스트의 언어)의 문법을 제대로 숙달하지 않으면 비문(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은 커녕,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토키포나는 미니멀리즘에 맞춰 어휘와 문법을 최대한 축소해놓았기에 문법이 어긋나게 되면 애초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되기 쉽상입니다. 문법이 어긋났어도 어느정도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언어와는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법적표지 li, e, pi, la 의 용법을 명확히 아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나마 한국인에게는 e 가 한국어의 ~을/를 과 상당부분 일치하기에 그나마 덜하지만, li 를 한국어의 ~은/는 또는 영어의 be동사 처럼 사용하거나, pi 를 영어의 of 처럼 사용하는 오류가 흔히 나타납니다.


<2> 토키포나의 특성을 이해한다.

 

뒤에서도 계속 언급하겠지만 토키포나를 사용해 원문의 모든 부분을 살려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부분 토키포나 번역 중에 생기는 문제는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 대다수입니다.

자연어는 모든 것을 가능하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내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뉘앙스 차이가 발달했지만, 토키포나는 반대로 가능하면 모든 것을 뭉뚱그려 최소화 해서 표현하려는 특징을 가진 철학어입니다.

 

자연어에서는 같은 뜻이라도 뉘앙스가 차이나는 단어들이 다수 존재하며, 단어단어 마다의 세세한 뉘앙스차이를 구분하고 내가 사용할 단어를 선택합니다. 한국어에서 "뜨겁다" "뜨뜻하다" "따뜻하다" "포근하다" 가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toki 말" "pona 좋은" 이라는 단어로 구성된 Toki Pona 는 사실 "좋은 언어" 라는 뜻이지만 그 이면에는 "간단한 언어" 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pona 라는 단어가 '좋은'이라는 뜻 말고도 '간단한'이라는 뜻도 갖고 있는 데, 이는  간단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제작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토키포나에서는 원문에서 나타나는 비슷한듯 다른 뉘앙스를 나타내는 모든 단어는 동일하게 표현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뜨겁다는 seli, 뜨뜻하다도 seli, 따뜻한 것도 역시 seli 이며, 포근한 것도 역시 seli 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는 뉘앙스차이뿐만도 아닙니다.

분명히 다르게 보이는 단어들도 한 단어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먹다는 moku 로 나타내는데, 액체를 마시는 것도 moku 로 나타내며, 삼키는 행위도 moku 로 나타낼 수 있으며, 약을 복용하는 것도 moku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를 "카테고리 언어"라고 칭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kili > 사과든 딸기든 버섯이든 양배추든, 모든 열매류의 총칭.

moku > 먹든 마시든 삼키든 섭취하든, 입을 통해서 몸에 들여보내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총칭.

 

이는 쿠팡이나 카페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카테고리와 매우 흡사합니다.

의류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여성의류, 남성의류, 운동화, 구두, 속옷 등"이 있지만 어쨌든 모두 의류로 통칭합니다. 

카페에서는 콜드 티, 핫 티, 스무디, 에이드, 핫커피, 아이스커피 등으로 나뉘지만 모두 "음료"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어는 위에서 분류한, 여성의류, 남성의류, 운동화, 스무디, 에이드, 아이스커피 등을 구체적으로(물론 이보다 더욱 자세히 세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토키포나는 의류, 음료 만을 이용해 소통하는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 자연어 : 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어.

토키포나 : 나는 음료를 먹다.


<3> 토키포나에선 짧게 나타낼 수록 좋다.

 

토키포나를 갓 배우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비슷한 단어끼리의 뉘앙스를 모두 살려서 번역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정하고, 상냥하며, 친절하다.

이 문장을 번역을 시킨다면 아마 "다정하다. 상냥하다. 친절하다"를 모두 나타내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toki pona 의 pona 는 심플함입니다. Simple is the best. 

 meli li pona.

다정한 것도, 상냥한 것도, 친절한 것도 모두 그녀가 가진 "좋은 성품"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결국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좋은"이라는 뜻을 가진 "pona"로 나타내는 것이 가장 pona 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족으로 위의 원문의 느낌을 모두 표현하려면 아래와 같이 나타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meli ni li pana e pilin pona tawa jan mute li jo e pilin pona li pali pona tawa jan mute.


<4> 구분할 필요가 없다면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

 

여기 까마귀가 주요한 등장요소로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까마귀를 뭐라고 표현할까요?

아마 waso pimeja 로 나타내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본문에서 까마귀의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waso 로만 나타내도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waso pimeja 도 그리 긴 단어는 아니기에 어느쪽으로 나타내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나오는 글이라면?

본문에 따라 다르겠지만, 굳이 까마귀와 까치의 특성이 나타나는 글이 아니라면 waso 와 waso pimeja 로 나타내도 충분할 것입니다. 까마귀는 waso pimeja, 까치는 waso pi pimeja en walo 라고 나타내지 않더라도 내용에 지장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표현하지 않더라도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때론 생략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5> 특히 원문에서 사용된 품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는 자연어 번역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실수입니다. 동사로 주로 표현하는 언어도 있으며, 명사로 주로 표현하는 언어도 있고 이는 해당 언어마다 특성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로들어서 "내 기분이 나빠"라는 말을 나타내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나타내시겠나요?

아마 한국인이라면 "pilin mi li ike"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내기 쉬울 것입니다.

명사주어와 형용사 서술어를 그대로 나타낸 방식입니다.

 

하지만 "mi pilin ike"라는 방식으로 ike 를 부사로(토키포나 문법에선 형용사) 나타낼 수도 있으며, "mi jo e pilin ike"라는 방식으로 형용사로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6> 영미권 화자의 표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미안하다를 mi pakala 를 주로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mi ike 를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차이가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토키포나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tomo tawa(이동하는 구조물)이지만, 운전자에게는 ilo tawa(이동하기 위한 수단/도구)가 될 수 있으며, 교통사고를 당했던 사람에게는 kiwen tawa(움직이는 단단한 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단어가 1:1 대응을 하는 언어가 아니라, 개개인마다 표현법을 달리하는 것을 존중하는 창조자의 의도이기도 하며, 그러한 철학을 품은 철학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배경 문화를 가지지 않은 인공어 특성이기도 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쓴다는 에스페란토조차 나라마다 모국어를 배경으로 한 표현법이 발달해 상당히 많은 방언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출판된 토키포나 어휘사전에서조차 여기에 나온 단어들은 참고용이며, 이 표현만이 정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토키포나는 정말 최소한으로 표현함을 미덕으로 여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표현법이 인정받는 관용적인 면을 가진 언어이기도 합니다.

 

토키포나가 영어권 화자들에게서 가장 메이저하게 쓰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정답일 수는 없으니, 오히려 단어단어마다의 정확한 용법을 익히고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식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만이 정답은 아니며, 번역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기에 참고로 봐주시길 바라면서, 모두 능숙한 토키포나 화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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